이사를 온 지 이제 1년 하고도 반이 더 지나가는데
이 동네에 살면서 특이하게 느낀 것 중 하나가 길고양이가 적다는 것이다.
(예전에 살던 동네는 주택이 밀집한 서울 시내였음에도 불구하고 길고양이가 무척이나 많았다.
왜 그런지는 의문이지만)
수가 적은 탓에 녀석들이 간간이 보이면 관심을 주곤 하는데
기억력이 짧은 내 머리로도 몇몇 인상에 남는 고양이들이 있다.
먼저.
우리 집 근처에 사는 듯, 단지를 배회하곤 하던 흰 양말 신은 검은 고양이.
간혹 유통기한이 지난 맛살 한토막을 남겨두면 잽싸게 가져가곤 했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올 봄 이후로 보이질 않는다. 이사를 간 건지, 혹 좋지 않은 일이 생겼는지.
두번째.
집 뒤편 학교 담벼락에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마침 음식점에서 남은 걸 포장해오던 복튀김을(!) 낼름 받아들고 간 하얀 고양이.
이 녀석은 어느날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걸 보았는데 요즘은 좀 뜸하다.
세번째.
역시 아파트 단지를 배회하는 노랑 얼룩의 하얀 고양이.
특이한 것이, 이 녀석은 참 못생겼다. 고양이 인물을 따져 무엇하겠냐만 차마 예쁘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래도 먹을 것 냄새는 신통하게 맡는지 장을 보고 오는 중에 나를 따라와서
먹을거리를 얻어먹고선 의기양양해했던 녀석.
(뿐만 아니라 요즘도 어디선가 먹을거리가 있다 싶으면 종종 이녀석이 알짱대는게 보인다.)
네번째.
보통 길고양이라면 사람을 피하기 마련인데, 사람 많은 상가 한 복판(그것도 극장 건물 앞 !)에서
도도하게 앉아 지나는 사람들을 (거만하게) 품평하듯이 바라보던 하얀 눈썹의 까만 고양이.
이 녀석은 작년 겨울에 종종 집 앞 상가(나름 번화한)에서 보였는데 올해는 보이질 않는다.
어찌나 기품이 있는지, 다른 고양이가 그냥 "고양이"라면 이 고양이는 "고양이 선생님"쯤은 되는 셈 싶다.
털 상태나 고고한 품새로 봐서는 길고양이는 아니고 어느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놀러나온 듯 했는데..
사실이 어떤 건지는 알 수 없다.
이상이 기억에 남는 고양이들.
사실 길고양이들과의 만남이란 눈길 한번 마주치고, 마침 갖고 있는 먹을거리가 있다면
한번씩 먹으라고 던져주는 것이 전부인데 (사람손에서 받아먹는 길고양이는 적어요)
어제는 모처럼 특이한 녀석을 만났다.
해가 다 져버린 저녁에 집을 나서다가 회색바탕에 까만 줄무늬를 가진 노란눈 고양이를 만났다.
꽤나 영리하게 생긴 인상.
아마도 가까이 가면 도망가겠지.. 생각하고 곁을 지나가는데 이 녀석, 나를 빤히 쳐다본다.
일단 손을 내밀었다. 할퀴거나 물고 도망가진 않을 것 같았다.
"이리와" (보통 이 단계에서 길고양이의 97%는 도망친다)
그런데 이 녀석, 순순히 곁으로 온다. 그리고는 내 손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쓰다듬어달라는 것이다. 도리가 없다. 고양이님이 쓰다듬어달라는데 거절할만한 배짱은 없는 나다.
이 녀석 만족스럽게 가르릉 거리더니 누워 뒹굴기까지 한다.
사람 손을 탄 녀석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애교는 만점이다.
그만 갈 길을 가야겠기에 일어나 걸어가는데 이 녀석이 따라온다.
"같이 갈래?"
대답은 않고 따라만 온다.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정확히 고양이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하지만 계속 따라오는 것도 곤란하다. 일단은 일이 있어 나가는 것이고
차도까지 (거기까지 따라올 리도 없겠지만) 오게되면 위험하기도 하다.
그러나 좀처럼 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럼 기다릴래? 가게 갔다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먹을 걸 줄게"
당연하겠지만 대답은 없다. 일단 속는 셈 치고 가게에서 참치통조림을 산다.
녀석이 가버리면 나중에 내가 먹으면 되니까.
(사람 먹는 참치가 좋지 않다는 건 알지만, 동네 슈퍼에서 고양이 캔사료를 팔진 않아요)
통조림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더니 예상대로 녀석은 없다.
내일 저녁엔 참치로 뭔가를 만들어야겠군.. 하고 피식 웃으며 돌아서는 순간
가게 옆 자동차 밑에서 녀석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사람 많은 길가는 무서우니 자동차 밑에 들어가 날 기다렸나보다.
(이쯤 되면 고양이가 사람 말을 할 줄 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인적이 좀 뜸한 어두운 길가에서, 자그마한 참치 한 통을 대접받은 줄무늬 고양이는
마지막 애교를 보여주고는 사뿐사뿐 제 갈 곳으로 간다.
나도 녀석을 뒤로 하고 내가 가려던 곳으로 향한다.
짧은 시간의 교감일 뿐이지만, 나도, 아마 그 녀석도 알고 있을 것이다.
다시 만나면 좋겠다고.
ps. 그나저나, 동네 고양이들에게 내가 만만한 놈으로 소문이 났나 보다. 흠..
네꼬씨
2008/11/08 00:00
2008/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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