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란 말을 한자로 풀어서는 因緣이라 쓴다. 인할 因자에 연 緣자를 써서, 보통은 사람 사이의 연분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이 말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불교에서는 이 말을 사물들 사이의 인과관계로 해석하기도 한다. 학식이 짧은 터라 불교의 경전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나(다 읽지도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주워서라도 들은 지식 나부랭이 중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개념 중의 하나이다.
(비슷한 예로 cause and effect를 들 수 있다. 아마도 영화 매트릭스를 보았다면 프랑스어로 우아하게 욕설을 내뱉던 메로빈지언이 인과관계를 논하며 말한 대사로 기억할지 모르겠다. 물론 여기서의 인과관계는 불경의 인연을 영역한 것이나 원문의 의미를 모두 내포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삶 전반의 의미를 탐구하기에는 내 식견이 너무나 얕아 감히 인연이란 단어를 가져오기 모자란다. 아직까진 연분, 정분을 말하는데 이 말을 쓰는 것이 고작이니 아직 갈 길이 멀다.
화엄경의 구절 중에 一千劫 同種善根者는 一國同出하며, 二千劫 同種善根者는 一日同行한다는 대목이 있다. 일천 겁의 인연을 함께 한 사람이 한 나라에 태어나며, 이천 겁의 인연을 함께 한 사람이 단 하루를 동행한다는 뜻이다. 종교관에 따라 믿을 수도, 신용치 않을 수도 있는 구절이지만 인연이 맺어진다는 우연한 “기적”을 표현하는데 저만한 것이 없다.
어느 사람과의 인연이 생기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굳이 절친한 사이가 아니라 해도 누군가를 알기 위해서는 (의도하지 않은)노력과 우연이 맞아 주어야 한다. 가끔 이런 우연들이 기이하게 겹쳐서 정말 좋은 “인연”이 생기는 일이 있는데,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굳이 뜻을 고집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엮어 보려 하여도 결국 잘 되지 않는 때가 있는데, 이를 바로 “인因”은 있으되 “연緣”이 없는 경우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세간의 “연애 상황”에 가장 자주 등장한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방적인 짝사랑이나, 사랑의 강권으로 인연을 맺고자 하는 경우도 있을법한 일이지만, 인연은 강요해서는 오지 않는다. 진정 연이 있다면 언제건 연결이 되는 법이다. 물론, 그 사이의 고통을 어떻게 감내하는가는 쉬운 일이 아닐테지만.
나는 전생에 덕을 덜 쌓은 탓인지 사람과의 인연이 적다. 인간관계도 좁은데다, 타고난 성질이 사람을 잡아두지 않는 편이라 주변에 물 흐르듯 스치는 사람은 많아도 곁에 남는 사람이 적다. 위에서 설명한 개념으로 따지자면 “인因”은 있으되 “연緣”이 적은 것이다. 그래도 평생 남을 좋은 친구 한 사람을 얻었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상담자를 얻었으며, 인생을 같이 갈 동반자도 얻었으니 풍족하다 할 수는 없어도 제 분수에 맞는 인연은 채운 셈이다. 전생의 나는 꽤나 실용주의자라 덕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맞는 만큼만 채웠던가 보다.
이 글을 읽어줄 내 공간의 몇 안되는 손님 중에는 자신이 저 인연이 닿은 것인가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내가 가진 인연이란 적으나 모두 깊으니
다들 너무나 소중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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